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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뮤직) 튀르키예의 대중음악(1)

유럽

by 가쁜사 2024. 3. 2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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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베스크 음악"으로 알려진 튀르키예의 대중음악을 소개합니다.

Arabesk Pop

고대 그리스인들은 에게해에 접한 아나톨리아 반도를 아시아라고 불렀습니다.

그 비옥한 땅은 노아의 방주부터 철기 문화의 시원인 히타이트, 고대 그리스, 로마를 거쳐 튀르키예에 이릅니다.

중국 서북방에서 시작하여 수백년간 "Go West"를 거듭한 끝에 11세기부터 아나톨리아에 정착한 돌궐의 후손, 튀르키예인들은 주변에 있는 그리스, 동로마제국, 페르시아, 발칸반도 여러 지역과 끝이 없는 좋고도 나쁜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Arabesque

비잔틴제국의 천년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은 오스만제국의 메호메트 2세에 정복당한 후 이스탄불로 불리게 됩니다.

메호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의 천년 역사를 존중하여 아야 소피아를 포함한 이교의 문화와 공존을 꾀하였습니다.

아라베스크는 식물의 줄기와 잎을 도안화하여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아랍의 독특한 무늬를 뜻하는데, 19세기 슈만이 하나의 악상에서 전개되는 환상적이고 장식이 많은 양식을 아라베스크로 명명하면서 퍼졌습니다.

고대로부터 동서양 문화의 교차로였던 아나톨리아에는 다양한 지역의 이민자들이 모여 살았고, 이 때문에 악기와 음악 장르의 다양성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의 음악이 아라베스크 음악으로 불리어진 것 같습니다.

 

애절한 목소리로 유명한 "Zeki Müren" (제키 뮤렌:1931~1996)은 "터키 예술의 태양"이라 일컬어지는 튀르키예의 국민가수입니다.

커밍아웃을 한 예술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터키인들은 커밍아웃을 부모님께 고백할 때  "나는 제키 뮤렌과 같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유명한 터키 민요 "우스크 다라"는 이스탄불항 건너 편에 위치한 보스포러스 해협에 접한 지역을 가르킵니다.

1953년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인 '어사 키트'가 터키어로 불러 세계적으로 알려졌습니다.

 

Mevlevi

외부인의 입장에서 아라베스크보다 더 많이 알려진 튀르키예 음악은 수피 수도승들이 염불을 외우는 음악 "메블레비"라는 생각이 듭니다.

메블레비 음악에 맞추어 자아도취상태에서 원형무인 "세마젠"을 추는 데르비시(탁발승)의 모습은 너무나 이질적인 한편 깊은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십여년 전 튀르키예 어느 동굴 속 공연장에서의 감동이 새롭게 밀려옵니다.

 

'사랑과 자신과 신과의 합일'로 대표되는 수피즘의 창시자 루미의 철학은 다음의 짧은 시로 압축됩니다.

오라, 오라! 당신이 누구이든 간에 오라!

방황하는 자든 불을 섬기는 자든 우상숭배자든 오라.

우리 학교는 희망없는 학교가 아니다.

맹세를 100번이나 깨뜨린 사람도 좋다. 오라.

 

Fasil

동유럽과 페르시아 못지 않게 튀르키예 문화에도 집시의 영향력은 큽니다.튀르키예에서 로만(Roman)으로 불리는 집시는 "파실"이라는 가벼운 클래식의 음악 양식과 벨리 댄스라고 불리는 "라크스 샤르키"를 만들었습니다.

주로 "G"조 클라리넷인 클라르넷, 바이올린, 술잔 형태의 타악기인 다르부카 등으로 구성되는 집시 악단의 파실 연주는 사랑과 배신, 굶주림, 음주와 관련된 노랫말로 구성됩니다.

"튀르키예의 베니굿 맨"이라 불리는 Mustafa Kandirali의 연주입니다.

 

동방의 춤이라는 의미의 라크스 샤르키는 "벨리 댄스"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습니다.

 

Anatolia Rock

튀르키예 사이키델릭 록 이라고도 불리는 "아나톨리아 락"의 선구자로 알려진 "Cem Karaca"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혼혈인데다가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튀르키예에서 핍박이 심했습니다.

그가 불렀던 민중가요 "1 Mayıs marşı"(메이데이 행진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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