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제국 보헤미아왕국(현 체코공화국) 출신의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řák)이 쓴 9번 교향곡 '신세계로부터' 2악장과 그로부터 나온 재즈와 크로스오버 곡을 전합니다.

유럽에서 활동하던 드보르작은 1892년 미국 뉴욕에 신설되는 내셔널 음악원 음악감독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미국에 도착한 드보르작은 '미국에는 아직 미국만의 클래식 음악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 씨앗을 흑인 영가와 아메리카 원주민의 음악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매우 대담하게 인종을 불문하고 모든 음악 전공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입학을 적극 유도하고 가르쳤습니다. 인종주의와 우생학이 판치던 당시에, 그는 드물게 유색인종의 문화적 잠재력을 일찍 알아본 사람이었고 미국 음악의 미래가 유럽을 모방하는 데 있지 않고, 흑인 영가와 아메리카 원주민의 음악을 토대로 미국만의 목소리를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890년대 미국은 유럽 이민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였습니다. 보헤미아 출신 이민자들도 뉴욕, 시카고, 아이오와, 네브래스카 등지에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고 드보르작은 체코 교회와 동포 사회를 자주 찾아 체코어로 대화하며 고향 사람들과 교류했습니다. 그는 그들 이민자들의 짙은 향수를 이내 알아 차렸고 음악의 형식을 빌어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던 그는 흑인 영가의 오음음계(펜타토닉), 단순한 선율, 긴 호흡, 슬픔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정서를 자신의 언어로 소화하여 이 곡을 만들었습니다.
작곡 당시에는 제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선율을 듣고 '그리움', '향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자연스럽게 느꼈습니다.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신세계에서')의 2악장입니다. 독일의 명지휘자 폴 카라얀의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입니다. 오보에와 비슷하게 생긴 따뜻한 음색의 잉글리시 호른이 호젓하고 애잔합니다. 19세기 유럽의 농촌 사람들은 대거 미지의 신세계로 이민와서 부대껴 살았습니다. 이 곡은 이민온 유럽 촌사람의 향수를 달래 준 대표적인 음악입니다.
드보르작의 제자인 윌리엄 아암스 피셔(William Arms Fisher)가 2악장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 만든 노래 'Going Home' 역시 많은 사람들의 오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크로스오버 소프라노인 노르웨이의 시셀 쉬르세뵈(Sissel Kyrkjebø)가 부르는 버전입니다.
시셀 쉬르세뵈는 '교회의 언덕'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나 수일내에 조용히 고향집으로 갈겁니다.
...
문은 열려 있고 거의 다 와 갑니다. 더 두려울 것이 없어라.
재즈 베이스의 성자 찰리 헤이든과 웅변적이고 서정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행크 존스가 함께 연주합니다. 담백합니다.
아일랜드의 여성 크로스오버 그룹 셀틱 우먼의 버전입니다.
편곡이 좀 멀리 간 거 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같은 분위기의 새로운 경치를 보여주는 예쁜 노래입니다.
미국 음악에 있어 드보르작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은 흑인 바리톤 가수이자 작곡가인 해리 테커 벌리(Harry T. Burleigh)였습니다.
벌리는 음악원에서 관리업무와 허드렛일을 하며 학비를 마련했는데, 일을 하면서 흑인 영가를 자주 불렀고, 이를 본 드보르작에게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악 전통에 깊은 관심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흑인 영가를 보존, 편곡, 홍보하여 여러 세대의 연주자들에게 널리 알렸고, 흑인 영가가 클래식 콘서트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하는데 크게 기여한 20세기 초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음악가 중 한 명입니다.
Deep river, my home is over Jordan. 이 노래는 노예들이 자유를 꿈꾸며 부른 작자 미상의 흑인 영가로 해리 벌리가 1916년 자신의 작품집에 수록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일부 음악학자는 신세계 2악장의 정서가 이 노래와 매우 가깝다고 말합니다. 선율을 그대로 인용한 것은 아니지만, 긴 호흡, 느린 진행, 고향을 그리워하는 분위기가 닮아 있습니다.
오페라 가수 제시 노먼의 음성입니다.
깊은 강, 내 집은 요단강 건너에 있네.
...
오, 당신도 그 약속의 땅, 모든 것이 평화로운 그 땅에 가고 싶지 않나요?
흑인 인권운동가, 배우, 변호사이자 세계적인 베이스 바리토너인 폴 로베슨이 노래합니다. 그의 아버지 드류 로베슨은 원래 노예였는데 남북전쟁때 탈출하여 후에 장로교 목사가 되었습니다.
드보르작은 흑인 영가에서 미국 음악의 미래를 보았고, 그리고 몇십 년 뒤 그가 남긴 선율은 다시, 아픔을 간직한 한 흑인 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자신의 출발점을 기억하고 싶었던 사람의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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